Hebrews 12

2006/03/13

인간 존재가 살아가면서 맞닥드리는 가장 중요하고 거대한 문제는 단연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 동서고금 지위고하을 막론하고 ‘자아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역사와 사상 전체를 지배하였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유한함과 나약함의 인식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때로는 희열을 때로는 좌절을 체험키도 한다. 특히 인간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아파할 때에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존재함의 본질을 생각할 때에 외부 세계와의 갈등을 배제할 수 없고, 때로는 그 갈등은 우리의 세계관 전체를 재조명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히브리서 12장은 이러한 정체성, 위기 문제에 대하여 인간에게 참 진리를 비춰준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히 12:5-6]

‘어떻게 고통받는 자를 사랑받는 자라 칭할 수 있는가? 채찍질 당하는 자가 기뻐할 수 있는가?’

주지해야할 단어는 ‘징계하심’과 ‘그 사랑하시는 자’ 이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자아 인식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심오한 단서가 녹아있다. 바로 징계함을 당하는 자는 다름아닌 ‘사랑받는 자’라는 역설적인 사실이며, 채찍질을 받는 자는 ‘아들’이라는 놀라운 선언이다. 이것에 대한 진위여부를 논함은 이곳에서 할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모든 문장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삶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놀라운 인식 체계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고통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자아를 인식하는 자, 고난 중에서 더욱 갈급한 마음으로 의와 진리를 구하는 자. 이러한 자들을 제한할 수 있는 사상, 혹은 체제가 이 땅에 존재 가능한가? 더 나아가 히브리서 12장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더욱 생생한 응원의 메세지를 던진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 12:3]

이 한 문장으로 인간이 피곤하여 낙심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것을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상처로 지니고 있는 자에게는 위대한 소망이 있다.

아, 놀라운 히브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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