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Seoul

2007/01/17

일주일 간의 홍콩여행을 마치고, 서울의 밤거리를 걸으며- 낮익은 한글 간판과 싸늘한 바람을 느꼈다. 홍콩의 일주일 간의 생활은 내가 세계의 도시인으로서 가져야할 자질과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였다.

Central에서 보았던 현대 건축물 안, 영어를 사용하는 3차 산업 종사자들의 반짝거리는 구두와 한 속에 든 Pacific Coffee takeout Temple Street Night Market에서 본 Cantonese를 사용하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의 굽은 허리와 한 손에 든 중국산 싼 담배 영미 관광객들의 half western, half eastern Hong Kong에 대한 호감과 그들이 아시아 대륙에 이룩한 거대 자본주의에 대한 찬사 Lantau Island의 Big Bhudda 옆 공중 화장실에서 들었던 크리스마스 캐롤과 바로 옆 Monastery의 강한 향내 High Anglican Church에서의 Eucharist service(성찬예배)의 엄격한 예배 스타일과 영국인 vicar의 보수성 상업화의 거대한 물결이 일렁이는 Causeway Bay 안 - Starbucks, Calvin Klein, Maxmara의 매장이 동시에 자리한 시끄런 건물 3층 Hostel에서 4일 밤 - Paul과의 Colossians(골로새서) 산책 여러가지 장면이 머릿 속에 남아 눈과 귀에 아련히 생각난다.

교수님의 호출로 분당에서의 생활이 급격히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

남서쪽 끝 도시에서 7년이 넘는 긴 학위과정을 보내야 하는 일생일대 변화의 시작이 눈 앞에 보인다.

거대한 스트레스가 날 감싸안기 시작했다. 난 진심으로 떨고 있다.

개체적 인간이 결국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함은 자명하다. 드디어 주체적 삶의 기초적 의문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심각하고, 급박하게)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학위 과정 중에 결혼을 해야 하나? 한다면 언제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한다면 주변으로 부터의 압박과 내면의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부와 학교의 보조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난 얼마만큼 열심히 일과 공부를 해야 하는가? 아이를 낳아야 하나? 그렇다면 언제 낳아야 하나? 양육비를 충당할 여력이 있는가? 연구 과정에서 이상적 신념과 현실적 이리가 상충할 때 무엇을 취해야 할 것인가? 아무도 여기에 대답해 줄 수 없다. 아무도 내 결정을 대신해 줄 수 없다.

다만 모든 결정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함은 자명하다. 이것이 성인의 증표이기에.

성인은 자신이 결정하고 취한 행동의 결과에 명확한 주도권을 가져야 하며- 이것은 때때로 정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Impossible is nothing.” Adidas

이 인상적인 광고 문구의 출처는 Luke의 복음서라고 봐야 할 듯 하다. 시제가 바뀌어 도치가 된 것 빼고..

“For with God nothing will be impossible.” Luke 1:37

우리 삶의 모든 성취와 극복의 전제는 ‘with God’ (하나님과 함께) 가 되어야 함을 이 문장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