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2007/08/30

드디어 반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기온이 3도 정도 뚝 떨어진 듯 하더니 시원한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누가 뭐래도 이 비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가을비라 할 수 있겠지.


‘시골의사’로 알려진 박경철씨가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다. 얼마나 편협한 시각을 갖고 공부하고 있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physician을 빗대어 ‘사람전문가’ 라는 재밌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얼마나 흥분되는 단어인가?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무엇보다 느끼기 힘든 것은 ‘나의 사랑’이다. 이 열정적이지도 냉랭하지도 않은. 광활한 화폭에 내 존재 전체를 쏟아부어 그려내고픈 사랑.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 난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NIH를 가겠다는 결심은 점점 명료해져 가고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이 날 막고 있는가? 수없이 많은 ‘머뭇거림’에 얼마나 많은 기회를 잃어 왔는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탁월한 과학자를 향한 소망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왔는가?’

미친듯이 퍼붓는 폭우 속에서 난 심한 갈증을 느꼈다. 온 천지는 물과 함께 넘실대고 있었고, 온 몸의 피부에서 땀이 펌프질하듯 배출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옷은 젖어버렸다. 내 주위에 건조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나, 정작 내 목을 적실 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손을 내밀어 빗물을 받는다. 빗물은 곧 손가락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내려옴을 느낀다. 갑자기 위산이 분비되어 속이 무척이나 쓰라렸다.

필사적으로 빗물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머리를 치켜들어 입을 벌린다. 목젖 양쪽으로 빗방울이 한두방을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뭄의 토지처럼 갈라져가는 느낌이었던 위장관을 빗물이 적시며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행복하다. 그러나 난 자각한다.

곧 이 비는 그칠 것임을. 그리고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