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fic Critics에 2012년 기고한 글을 가져왔습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그대에게
I. 소개
“가장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인간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Only those who will risk going too far possibly finds out how far one can go.”
- T.S. Eliot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복합학위과정(MD/PhD)을 밟고 있는 한성필이라고 합니다. 복합학위과정은 의학면허(Medicinae Doctor, MD)와 박사학위(Philosophiae Doctor, PhD)를 동시에 추구하는 매우 특화된 과정으로서 “전문 임상경험과 연구력을 겸비한 신진 의과학자 양성"을 목적으로 합니다.[1] 다른 의학교육 과정이 4년으로 구성되는데 비해서 이 복합학위과정은 총 6-8년으로 구성이 되는데, 초반 2년은 기초의학을 배우고 후반 2년은 임상의학 실습을 하고 그 사이에 박사학위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박사논문(Dissertation)을 작성하게 됩니다. (Fig. 1)
Fig 1. MD/PhD 과정 – 프로그램 구성
생명과학과 임상의학을 통괄할 수 있는 의학자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과 함께 개설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30여명 이상의 학생이 수학하고 있고 일년에 한번씩 모여서 서로 연구하는 것을 격려하고 선배 의과학자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습니다. (Fig. 2)
Fig 2. 제 1회 복합학위과정생 연차총회 및 워크숍
저는 지금 미국의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NIH)의 한 분과인 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Neurological Disorders and Stroke;NINDS)에서 박사논문을 위한 연구를 3년째 하고 있고 곧 한국으로 돌아가 임상의학실습을 하게 됩니다.
Fig 3. 연구하는 모습 / 랩 동료들과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제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터 지금까지 약 12년간 걸어온 다소 복잡한 길을 Scientific Critics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려 합니다.
II. 고등학교시절–“신경과학자를 꿈꾸며”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꿈에 부풀었던 고등학생 시절이 바로 어제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 생물학과 화학에 소질이 있었고 이 소질을 잘 살려서 신경과학자(Neuroscientist)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 컴퓨터를 사용해서 복잡한 인간의 정신세계와 뇌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제 꿈은 구체성이 결여된 미성숙한 단계였던 것 같지만 그래도 공대에 진학해서 신경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힘든 입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III. 대학교 시절–“공대에서의 방황과 배움의 즐거움”
그리고 저는 2000년도 고려대학교 공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학교장 추천 수시모집전형으로 합격하여 일찌감치 입시에 대한 부담을 다소 떨쳐버리고 입학할 때까지 열심히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마어마한 공부량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면 학업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취미생활과 동아리 활동을 여유롭게 하면서 조금씩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교는 보다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가는 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 신입생 시절에는 엄청난 학업량이 너무 부담되었던 나머지 아예 진도를 놓친 후 따라잡는 것을 포기하도 하였습니다. 일반화학, 일반물리, 통계학, 미적분학, 공업수학, 영어 그리고 각종 교양수업등 공대 1,2학년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저는 이 시기에 공학을 배우기 위해 방대한 기초지식을 습득 하면서 일종의 일탈과 방황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과학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갖고 대학에 진학했을지라도 때때로 이러한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을 배우며 호기심을 충족시키던 그 즐거움을 떠올렸고 제 꿈을 다시 구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처음 화학과 생물학을 배울때 공유결합을 이해하려 전자쌍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려보고, Central Dogma를 배우며 DNA의 전사(transcription)와 번역(translation)을 알아가며 어렵고 복잡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흥분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배움에 애틋함과 간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운것이 입시와 직결된다는 생각때문인지 더 열심히 외우고 적용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러한 간절함, 그리고 배움의 즐거움을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잠시 잊고 있었고 다른 즐거운 것들(?)에 정신이 팔려 정작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어쩄든 저는 군대에 다녀오고 이러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성적도 오르고 공학에 대한 흥미도 커지고, 신경과학자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키웠습니다. 전기회로, 전자회로, 물성공학, 반도체공학, 데이터구조, 컴퓨터언어, 인공지능 등등 수많은 공학과목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각각 현대 응용과학의 결정체를 배우고 있다는 점에 흥미를 갖고 배우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4년간 전기전자전파공학을 공부하고 어느덧 졸업할 시기가 다가왔고 저는 진로고민을 심각히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신경계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공대에 왔는데 막상 제가 배운 것들은 회로이론, 반도체, 컴퓨터 언어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공학적 지식과 더불어 인간의 신경계를 좀더 자세하고 총체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였습니다. 저는 연구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 MD과정이 아닌 복합학위과정(MD/PhD)을 택하여 진학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파편처럼 흩어져있던 공대에서 배운 과목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미처 몰랐지만 훗날 이러한 공학지식이 빛을 발할 때가 찾아오게 됩니다. 저는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이 결국 어떠한 유형으로든 미래에 효용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IV. 의학전문대학원–“의학의 방대함”
저는 의학전문대학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시체해부를 하며 열심히 해부학을 공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생화학, 조직학, 병리학, 신경해부학, 약리학 등의 다양한 과목에서 외워야 할 지식들이 너무 많았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질병을 파악하고 예방/치료하기 위해 이러한 지식이 사용될 수 있기에 큰 지적 즐거움이 수반되기도 하였습니다. 의학공부는 수학과 물리학에 기반을 둔 공학공부와는 사뭇 성격이 달랐지만 결국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 보다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고, 우리는 이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해야 하는 사실에는 학문간에 구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Fig 4. 해부학 실습을 마친 날, 동기들과 학교 앞에서
신경과학 과목을 배우며 저는 비로소 제가 왜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특권이었습니다. 인공지능 시간에 배운 신경망(Neural Network)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신경세포의 탈분극(depolarization)을 통한 정보의 전달과 그 짜임새는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Fig 5. 신경세포의 구조[2]
의대에서 2년간 기초의학을 배우고 박사과정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여 해부학교실의 뇌신경과학실험실에서 랩생활을 시작한 것은 또다른 도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책상에 앉아서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기만 했다면 랩에서의 연구활동은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생각해내고 그것을 실험테크닉을 사용하여 구현하고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활동이라 할 수 있었니다. 그리고 실험은 여러가지 변수가 많아서 이를 잘 통제하는 것이 일관된 결과를 얻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얻어진 결과를 다양한 분석툴을 사용하여 논문을 작성하고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이 수반되어야 했습니다. 저는 성인의 원발성 뇌종양중 가장 흔한 교모세포종의 증식과 전이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Snai1이란 유전자가 이 과정을 중요하게 매개한다는 사실을 밝혀 2011년 논문을 출판하였습니다.[3] 처음 실험 설계부터 논문출판까지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해부학교실의 오세옥 교수님의 도움이 굉장히 컸습니다. 이 과정을 함께 진행하면서 저는 의학 연구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비로소 꺠닫게 되었고, 좋은 스승, 좋은 리더를 만나서 함께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곳에서의 보다 폭넓은 연구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미국 국립보건원에 유학을 도전하게 되었고 많은 컨택 끝에 남은 박사과정 3년을 미국 국립보건원 신경면역학실험실에서 Dr.Bielekova의 지도아래 보내게 되었습니다.
V. 미국국립보건원 박사과정–“Systems biology와 공학 지식”
제가 박사과정을 통해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신경면역학 질환의 병리기전과 치료입니다. 신경면역학 질환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입니다. 이는 유전적, 환경적인 이유로 면역세포가 신경세포를 공격하여 수초(Myelin)을 파괴하여 신경세포의 축삭(Axon)을 파괴해 신경세포의 도약전도를 방해하여 생기는 질병입니다. (Fig 6) [4] 제가 위에서 그토록 찬양했던 아름다운 신경세포를 자신의 면역세포가 공격한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질병입니까? 이렇게 자신의 면역세포가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질환을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이라고 부르고 다발성경화증, 1형 당뇨병, 건선(Psoriasis) 등이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입니다. 다발성경화증은 현재로서 질병의 진행을 완화시키는 치료법만이 존재하며 신경세포의 재생을 통한 기능의 회복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 실험실은 이러한 신경계-면역계의 상호연관 관계를 다양한 실험방법과 임상시험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Fig 6. 다발성 경화증의 pathogenesis (발병과정) [4]
미국 국립보건원의 특별한 장점이 이러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 랩은 클리닉과 불과 30초 이내의 거리에 있어서 환자의 샘플을 바로 실험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이러한 분석이 바로 환자의 치료에 응용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동시에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바로 임상시험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임상시험에서 얻어진 연구 결과를 다시 치료에 응용하여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가는 거대한 구조가 미국 국립보건원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Fig 7. Systems Biology란 무엇인가?[5]
특별히 우리 신경면역학실험실은 systems biology관점으로 다발성 경화증의 치료를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Systems biology란 단순한 생명현상의 파편을 연구하는 것이 아닌 컴퓨터를 이용한 생명정보학의 도움을 통해서 high-throughput하게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총체적인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Fig 7) Systems biology의 이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명정보학(Bioinformatics)의 구현을 위해 공학적인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선 통계와 수학을 잘 알아야 하며, R이라 불리우는 생명정보학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언어가 python과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어 제가 공대에서 배운 컴퓨터 언어지식이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량의 데이타를 다루어야하는 systems biology학문의 특성상 랩에서 SQL기반의 데이타베이스를 구현할 일이 많았는데 연구를 수행하는데 전자공학과 컴퓨터를 학부때 많이 배워둔 것이 의학연구를 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결과로 두편의 논문[6, 7]을 출판했고 다수의 학회 발표를 할 수 있었으며(Fig 8), 현재 두세편의 논문을 추가로 작업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청년의사와 한국MSD에서 주관하는 청년슈바이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8] 이 모든 것이 공과대학에서 배운 공학지식과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배운 의학지식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효과를 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Fig 8. 미국 보스톤에서 열린 International Society of Neuroimmunology (ISNI) 2012
VI. 여러분의 미래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전문성을 가진 과학자, 공학자의 역할이 막대할 것입니다. 특히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한곳으로 아우르는 “융합(Convergence)”, “병진(Translation)”의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최신 학문, 특히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컴퓨터, 전자공학 지식은 너무나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이 수학이든, 통계학이든, 컴퓨터공학이든, 물리학이든, 생물학이든, 공학이든- 어떠한 이공계 학문을 배우던 축복받은 것임을 깨닫고 놓여진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세요. 이공계 학문을 배워 나간다는 것은 첨단과학을 이끌 리더가 될 자질을 갖춰간다는 뜻이며, 커다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서두에 썼던 T.S.엘리엇의 명언처럼 과감히 도전하고 자신이 얼마나 멀리갈 수 있을지 내딫어 보세요. 여러분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혁신을 갈망한다면 여러분이 피땀흘려 습득한 지식은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경험했듯이 아주 예술적인 타이밍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 지식이 꽃을 피우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8월 메릴랜드에서
한성필
https://shanmdphd.rbind.io
References
- 한국연구재단 의과학자육성지원사업. Available from: http://www.nrf.re.kr/nrf_tot_cms/board/biz/biz.jsp?show_no=170&check_no=169&c_relation=biz&c_relation2=0&c_no=204&c_now_tab=0.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Wikimedia Foundation, I. Action potential. Available from: http://en.wikipedia.org/wiki/Action_potential.
- Han, S.P., et al., SNAI1 is involved in the proliferation and migration of glioblastoma cells. Cell Mol Neurobiol, 2011. 31(3): p. 489-96.
- Steinman, L., A molecular trio in relapse and remission in multiple sclerosis. Nat Rev Immunol, 2009. 9(6): p. 440-7.
- Kitano, H., Systems biology: a brief overview. Science, 2002. 295(5560): p. 1662-4.
- Wuest, S.C., et al., A role for interleukin-2 trans-presentation in dendritic cell-mediated T cell activation in humans, as revealed by daclizumab therapy. Nat Med, 2011. 17(5): p. 604-9.
- Perry, J.S., et al., Inhibition of LTi cell development by CD25 blockade is associated with decreased intrathecal inflammation in multiple sclerosis. Sci Transl Med, 2012. 4(145): p. 145ra106.
- 청년의사. “미래를 이끌 의학자, 따듯한 의사로 성장하길”. 2012; Available from: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21028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