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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4

If we trace back our anxiety of worry in our life, there seems to be little faithfulness or obeidience which makes our life letharghic or barren. The lord doesn’t want us to be anxious for what we live by or what we are used for because He ensured our way that there would be His guidance and direction with His love. That’s everasting warmth.

But the enemy always tempts us to be beleaguered by her trap and snare which are seemingly good and attractiong.

O lord, please protect me from such deception and scheme.

“Be anxious for nothing; but in every 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unto God.” (Philippians 4:6)

유학생활 4개월째. 먹고 자는 것에 문제는 없지만 다만 조금 아쉬운 건 거울 앞에 섰을 때에 모습- 사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좀더 말끔하고 단정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그렇게 다니기가 쉽지 않구나..

빨래를 한꺼번에 모아서 하다보니, 같은 옷을 매일 입고 다니는 것은 예사랄까? Washing machine에 1.6파운드를 넣고 Normal mode로 돌릴까 1.8파운드를 넣고 Powerdrive로 돌릴까를 놓고 한참 고민하는 찌질스러움은 둘째 치고서라도, 빨래하기 위한 ‘여유’의 금액이 더욱 비싼 듯 다가온다. Coursework와 영어 공부 외에 여유 시간이 날 땐, 빨래가 우선순위가 되었던 적은 별로 없으니까- 그 Laundary room까지 가기가 너무 버거운 것은 타고난 게으름이겠지..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을 빙자한 일종의 방종일지도 모르겠다.

뿔테안경이 지겨워져서 무테안경을 써보니 너무 어색한 내 모습. 이내 유행지난 뿔테안경으로 바꿔낀다. 게다가 이발 비용을 감안해 머리를 군인이었던 때처럼 싹둑 자르고 나니 그나마 풍기던 Out-of-bed look마저 불가능 해지고, 이제는 영락없이 구질구질한 복학생의 모습이 되어버리다- 오랜 만에 렌즈를 끼고 안경을 벗고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로 향하는 주일엔 훈련소 때 느꼈던 ‘종교참석’의 기분이랄까? 군화손질하고 가죽장갑끼고 모자각을 세우고 행여나 민간인과 대화라도 해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힘차게 걸어갔던 3년전 주일의 기분이 아마 유사하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한껏 멋을 부리고 데이트에 나갔을 때, 아무 말이 없었던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에 느꼈던 섭섭한 감정에 ‘아직 어리구나’ 피식 웃었던 추운 날.

언젠가 한껏 멋을 부리고 나온 그녀를 보고, 아무 말이 없었던 나의 마음과 같았을까? 외모에 동요하는 男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요상한 자존심이었을테지- 너무나 아름다웠음에도 표현할 수 없었던 Irony.

큰 진폭의 파동 함수처럼 우리들의 마음 속은 엇갈렸던 것일까? 아니면 정파된 그래프처럼 한쪽은 단절되어 있었던 것일까?

하….하